물 110톤이 필요한 화재, 전기차 화재 대응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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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17

물 110톤이 필요한 화재, 전기차 화재 대응 기술

지난 8월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시작된 전기차 화재는 8시간 동안 지속되어 800여 대의 차량에 피해를 입혔습니다. 

전기차 한 대가 불타면 진화에 필요한 물의 양이 무려 110톤에 달합니다. 일반 내연기관 자동차 화재 진압에 쓰이는 물의 약 110배에 해당하는 양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배터리가 1000도가 넘는 고온으로 치솟으면서 기존 소화 방식으로는 완전한 진압이 어렵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도전 앞에서 과학기술과 안전 시스템은 멈춰 있지 않습니다.

배터리 관리 시스템의 고도화, 전용 소화 장비의 개발, 그리고 체계적인 대응 매뉴얼 구축을 통해 전기차 화재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열폭주, 전기차 화재의 핵심 메커니즘을 이해하다

전기차 화재의 핵심은 '열폭주(thermal runaway)' 현상에 있습니다.

리튬이온 배터리가 과충전, 외부 충격, 고온 등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배터리 내부에서 연쇄 화학반응이 시작됩니다. 이 과정에서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여 수 초 내에 1000도를 넘어서게 됩니다.

서울대학교 임종우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열폭주 과정에서 흑연 음극재에서 발생한 에틸렌 기체가 하이니켈 양극재로 이동하여 산소 기체 탈출을 유도하고, 이 산소가 다시 음극의 에틸렌 기체 발생을 촉진하는 '자가증폭루프' 반응이 핵심 메커니즘임이 밝혀졌습니다. 이러한 연쇄반응으로 인해 열폭주는 기존 예상보다 훨씬 급격하게 악화됩니다.

분리막(separator)은 양극과 음극의 직접 접촉을 차단하는 중요한 부품입니다. 하지만 고온이나 압력으로 인해 분리막이 손상되면 양극과 음극이 직접 만나면서 내부 단락이 발생하고, 이는 곧바로 화재로 이어집니다.

최근 여름철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화재들은 에어컨 실외기와 자동차가 내뿜는 열기가 지하에 축적되면서 배터리 온도를 높인 것이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기존 소화 방식의 한계와 대안 기술

전기차 화재는 기존 소화 방식으로는 진압이 극히 어렵습니다.

배터리 팩이 차량 하부에 견고한 프레임으로 보호되어 있어 외부에서 소화약제가 침투하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에 적응성이 있는 소화기는 국제적으로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현재 소방당국이 사용하는 주요 진압 방법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1대. 대량의 물을 이용한 냉각 소화

첫째는 대량의 물을 이용한 냉각 소화입니다. 차량 전체에 물을 뿌리고, 차량 하부에 분수 형태의 장치를 설치하여 배터리에 직접 물이 닿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미국의 사례에 따르면 심각한 경우 소방대원 87명이 최대 10만 리터의 물을 부어야 진화가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 질식소화 덮개의 산소 차단 방식

둘째는 질식소화 덮개를 이용한 산소 차단 방식입니다. 특수 제작된 덮개로 차량 전체를 덮어 산소 공급을 차단하여 화재 확산을 방지합니다. 인천광역시는 모든 아파트 단지에 질식소화 덮개 보급을 추진하고 있어 주목받고 있습니다.

3. 이동식 수조의 침수 방식

셋째는 이동식 수조를 이용한 침수 방식입니다. 튜브 형태의 이동식 소화 수조로 차량 주변을 감싸고 배터리가 완전히 잠길 때까지 물을 채우는 방법입니다. 이는 배터리를 완전히 냉각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BMS? 예방과 조기 감지를 하려면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은 전기차 화재 예방과 조기 감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BMS는 배터리 팩에 장착된 센서를 통해 각 셀의 전압, 전류, 온도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이상 징후를 감지하면 즉시 대응 조치를 취합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BMS는 3단계 안전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1단계에서는 충전 제어기와 연동하여 안전한 충전량 범위에서 전류를 제어하고, 2단계에서는 과충전이나 과전류 상태를 감지하면 충전을 강제로 중단합니다. 3단계에서는 그래도 전류가 흐를 경우 릴레이를 차단하여 물리적으로 전기 유입을 막습니다.

최근에는 BMS 기술이 더욱 고도화되어 '미세 단락' 감지까지 가능해졌습니다. 과거에는 전압과 온도 등 기본 데이터만 활용했지만, 이제는 SoX(State Of X)라고 불리는 다양한 상태 정보를 통해 화재 직접 원인인 단락 여부까지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은 2024년 자동차안전도평가(KNCAP)에 BMS 보호기능 평가를 세계 최초로 도입했습니다. 배터리 상시 감시, 자동 신고, 정보 저장 등 3가지 항목을 평가하여 전기차 화재 예방에 도움이 되는 BMS 신기술을 적용한 차량이 2024년 25개 차종으로 늘어났습니다.


화재 예방을 위한 사용자 안전 수칙

전기차 화재 예방을 위해서는 올바른 충전 방법이 중요합니다.

완속 충전기로 80~90% 정도만 충전하는 것이 화재 예방에 도움이 됩니다. 급속 충전은 배터리에 열적 스트레스를 가중시킬 수 있어 일상적인 사용보다는 장거리 여행 시에만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충전 환경도 중요한 고려사항입니다.

통풍이 잘 되는 지상 주차장이 지하주차장보다 안전합니다. 지하주차장의 경우 열기가 축적되기 쉽고, 화재 발생 시 연기와 유독가스 배출이 어려워 대피에 불리합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충전소를 지상에 설치하여 전기차는 지상 주차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주차 시에는 인화성 물질이 없는 공간을 선택해야 합니다.

주차장 내에 있는 기름이나 화학 물질은 화재 발생 시 확산을 가속화할 수 있습니다. 또한 소화기와 같은 기본 안전 장비가 준비된 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추돌 사고 등 외부 충격을 받은 후에는 반드시 배터리 안전점검을 받아야 합니다.

즉각적인 발화가 일어나지 않더라도 분리막 등에 발생한 손상이 시간이 지난 후 화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서는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검사소와 전자장치진단기(KADIS)를 사용하는 민간검사소에서 배터리 점검이 가능합니다.

화재 특수성을 고려한 소방 훈련 강화

소방당국은 전기차 화재의 특수성을 고려한 체계적인 대응 방안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서울시소방재난본부는 2023년 6월 국립소방연구원, 한국소방기술원과 함께 실제 전기차를 사용한 화재 재연 실험을 실시하여 확보한 데이터를 매뉴얼로 제작해 다른 지자체에도 배포할 계획입니다.

경북도소방본부는 2017년부터 2023년 상반기까지 총 101차례의 화재 대비 소방훈련 및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전북 정읍소방서는 '전기차 차종별 대응 가이드'를 제작하여 보급함으로써 차종별 특성을 파악한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전기차는 차종별로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일부 전기차는 외부 전력 공급이 끊기면 도어캐치가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 이를 모르면 구조 작업에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화재 진압 장비도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피어싱 관창(piercing nozzle)은 배터리 팩에 구멍을 뚫어 직접 물을 주입할 수 있는 장비로, 기존 방식보다 효과적인 냉각이 가능합니다. 또한 다양한 크기의 이동식 수조와 질식소화 덮개가 전국 소방서에 배치되고 있습니다.

기술 발전으로 여는 안전한 미래

전기차 화재 안전성 향상을 위한 기술 개발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배터리 셀 사이에 특수 소화 기능을 가진 캡슐을 장착하는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이 소화캡슐은 배터리 셀의 온도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열폭주 현상 발생을 최대한 늦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으로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의 액체 전해질을 고체로 대체하면 화재 위험성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용화까지는 약 10년 정도 더 기다려야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보 공유와 표준화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현재 완성차 업체와 배터리 제조사 간의 데이터 공유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안전을 위해서는 BMS 데이터의 일부라도 공유되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스마트 제어 충전기 등 외부 안전 장치의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전기차 화재 대응은 제조사, 소방당국, 사용자 모두의 협력이 필요한 과제입니다.

제조사는 더욱 안전한 배터리와 화재 예방 기술을 개발해야 하고 소방당국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대응 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사용자는 올바른 충전과 관리를 통해 화재 위험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전기차 화재 발생률이 내연기관차보다 높다는 통계적 근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화재 발생 시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이에 맞는 대응 방안이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부정적인 시각보다는 현실적인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으로는 더욱 정교한 BMS 기술과 첨단 소화 장비, 그리고 체계적인 안전 교육을 통해 전기차 화재에 대한 대응 능력이 지속적으로 향상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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