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권 계좌를 비대면으로 열 때 시스템이 확인하는 것은 신분증의 진위와 신청자의 얼굴만이 아닙니다. 그 뒤에는 대포계좌를 막기 위해 금융권이 오랫동안 지켜온 또 다른 규칙이 함께 걸려 있습니다. 짧은 기간 안에 여러 금융사에서 입출금 계좌를 새로 여는 행위는 자율적으로 제한되어 왔고, 이 제한을 놓치면 신원확인이 아무리 정확해도 대포계좌 방지라는 본래 목적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신원을 확인하는 절차와 동시에, 신청자의 최근 계좌개설 이력을 조회하는 절차를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 두는 작업이 증권사 eKYC 고도화에서 가장 먼저 갖춰야 할 부분입니다.

이 제한은 법령이 강제하는 의무라기보다 업권이 자율적으로 합의해 지켜온 관행에 가깝습니다. 그래서인지 적용 방식도 증권사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타 금융사 계좌개설 후 20영업일이 지나야 신규 개설을 받아 주는 곳이 있는가 하면, 급여이체나 재직증명서 같은 서류만 갖추면 그 이전에도 문을 열어 주는 곳이 있습니다.
은행연합회의 계좌개설 이력 조회 결과를 신원확인 화면과 한 화면에 띄워, 두 판단이 따로 놀지 않도록 시스템을 엮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증권사와 은행은 저마다 다른 목적으로 이력을 관리해 온 만큼, 화면만 합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서로 다른 데이터 형식을 맞추는 작업까지 함께 따라와야 합니다. 이 조회를 신원확인과 떼어 놓으면, 신청자는 신분증 촬영과 얼굴 인증을 모두 마친 뒤에야 "개설이 불가능하다"는 안내를 받게 됩니다. 왜 진작 말해 주지 않았느냐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기업공개 공모주 청약이 시작되면 특정 증권사로 신규 개설 신청이 짧은 기간에 몰립니다. 동시에 다수계좌 제한에 걸려 계좌를 열지 못한 신청자들의 문의도 함께 쌓입니다. 청약은 마감일이 정해져 있어 하루이틀의 지연이 곧바로 기회 상실로 이어지는 만큼, 이 시기의 심사 지연은 평소보다 훨씬 무겁게 체감됩니다. 청약 목적이 뚜렷한 신청 건은 증빙 서류를 온라인에서 곧바로 받아 신속하게 심사로 넘기는 별도 경로를 마련해 두면, 정규 심사 인력만으로 감당하기 벅찬 물량을 나눠 처리할 수 있습니다. 청약 일정은 미리 공지되므로, 예상 신청량에 맞춰 그 기간만 심사 인력을 한시적으로 늘리는 방안도 함께 검토할 만합니다.

비대면으로 계좌를 개설한 뒤 바로 해지하는 신청자도 적지 않습니다. 같은 증권사라면 대개 다음 날부터 재개설이 가능하지만, 다른 증권사로 넘어가면 여전히 제한이 걸립니다. 계좌 폐쇄 이력과 그 시점을 재개설 심사 화면에 그대로 노출해, 상담 인력이나 자동 심사 로직이 놓치지 않도록 하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이 표시가 없으면 상담 인력은 매번 다른 시스템을 열어 확인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처리 속도도 실수도 함께 늘어납니다. 개설과 폐쇄를 유독 자주 반복하는 계좌는 이벤트나 경품만 노린 행태일 가능성도 있어, 대포계좌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눈여겨볼 신호로 함께 기록해 둘 만합니다.

정식 계좌개설에 앞서 준회원이나 임시 회원으로 먼저 등록하도록 하는 증권사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 준회원 이력이 시스템에 남아 있으면, 나중에 정식 개설을 신청할 때 중복 신청으로 오인되어 절차가 막히는 경우가 생긴다는 점입니다. 준회원 이력과 정식 계좌개설 이력을 시스템에서 명확히 나누고, 정리가 필요한 상황이면 그 사실과 처리 방법을 신청자에게 곧바로 알려 주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안내가 없으면 신청자는 영문도 모른 채 같은 절차를 반복하게 되고, 준회원 가입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결국 고객센터 문의로 이어져 상담 인력의 부담만 늘어납니다.
증권사 비대면 계좌개설 eKYC의 고도화는 "이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다음에는 "이 사람이 최근 다른 금융사에서 무엇을 했는가"라는 질문이 이어져야 합니다. 신원확인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이 두 번째 질문과 맞물리지 않으면, 대포계좌를 막기 위해 만들어 둔 제한 규정을 시스템 스스로 못 본 척하는 셈이 됩니다. 결국 eKYC 고도화란 신원확인이라는 좁은 절차 하나를, 업권 전체의 계좌개설 흐름이라는 더 큰 그림 안에 정확히 끼워 맞추는 작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