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 배상책임 법제화는 금융기관이 고객에게 발생시킨 손해에 대해 법적으로 보상해야 하는 의무를 구체적으로 정한 제도입니다. 미안하다고 사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피해 금액을 돌려주고, 경우에 따라서는 추가적인 배상까지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은행 시스템 오류로 고객 계좌에서 돈이 잘못 빠져나갔다면 은행이 그 금액을 되돌려주는 것은 물론 이로 인해 고객이 입은 추가 피해까지 보상해야 합니다. 이런 책임을 법으로 명확하게 정한 것이 배상책임 법제화입니다.
2024년 9월 개정된 전자금융거래법은 금융회사의 배상책임을 크게 강화했습니다. 기존에는 특정 사고 유형에만 금융회사가 책임을 졌지만, 이제는 이용자가 허용하거나 지시하지 않은 무권한 비대면거래로 인한 손해 전반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입증책임의 전환입니다. 예전에는 고객이 "금융회사 잘못이다"라는 것을 증명해야 했지만, 이제는 금융회사가 "우리 잘못이 아니다"라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특히 해당 비대면 거래가 금융회사가 관리하는 영역 외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을 금융회사가 입증해야 합니다.
접근매체 관련 사고
신용카드, 체크카드, 계좌번호나 비밀번호 등이 위조되거나 변조되어 발생한 피해입니다. 누군가 고객의 카드를 복제하거나 계좌정보를 도용해서 돈을 빼간 경우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전자적 전송 과정 사고
온라인 뱅킹이나 모바일 뱅킹에서 거래 지시를 보내거나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로 인한 피해입니다. 시스템 장애나 통신 오류로 거래가 잘못 처리된 경우입니다.
해킹으로 인한 사고
전자적 장치나 인터넷망에 침입해서 부정하게 획득한 접근매체를 이용한 사고입니다. 해커가 금융회사 시스템에 침입해서 고객 정보를 빼내어 악용한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무권한 비대면거래 (2024년 새로 추가)
고객이 허용하거나 지시하지 않은 모든 비대면 거래로 인한 손해입니다. 보이스피싱이나 스미싱 등으로 인한 피해도 상당 부분 이 범위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2021년 시행된 금융소비자보호법은 금융회사가 고객에게 금융상품을 판매할 때 지켜야 할 6대 원칙을 정했습니다. 적합성원칙, 적정성원칙, 설명의무, 불공정영업행위 금지, 부당권유금지, 광고규제가 그것입니다.
이 원칙을 위반하면 금융회사는 고객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70세 노인에게 고위험 파생상품을 권유해 손해가 발생했다면, 이는 적합성원칙 위반으로 금융회사가 배상책임을 져야 합니다. 또한 상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판매했다면 설명의무 위반으로 책임을 집니다.
2023년 10월부터는 금융상품 방문판매 및 전화권유판매에 대한 규제도 강화되었습니다. 방문판매를 하려면 미리 목적과 성명, 금융상품의 종류 등을 알려야 하고 고객이 연락 금지를 요구하면 이를 지켜야 합니다.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으로 자금이체업자와 선불전자지급수단 업체는 고객으로부터 받은 이용자예탁금을 회사 자산과 구분하여 은행 등 관리기관에 별도 관리하도록 의무화되었습니다. 이는 머지포인트 사태와 같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만약 전자금융업체가 도산할 경우 이용자예탁금은 다른 채권자보다 우선하여 고객에게 돌려받을 수 있는 우선변제권도 부여되었습니다. 또한 선불충전금의 100% 이상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급보증보험이나 신탁, 예치 등으로 보호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법제도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점차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는 실제 손해액보다 더 많은 배상액을 부과하여 악의적 행위를 억제하고 예방하는 제도입니다.
현재 특허법, 상표법, 개인정보보호법, 하도급거래 공정화법,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법 등에서 손해액의 3배 이내 배상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과 근로기준법에서는 더 엄격하게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2025년 10월부터는 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라 근로자에 대한 임금 체불이나 부당해고 등에 대해서도 징벌적 손해배상이 적용될 예정입니다. 금융 분야에서도 향후 이런 제도가 도입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물론 모든 경우에 금융회사가 배상책임을 지는 것은 아닙니다. 전자금융거래법은 금융회사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경우를 명확히 정하고 있습니다.
고객의 고의나 중대한 과실
고객이 일부러 하거나 매우 큰 실수를 한 경우입니다. 단, 이는 금융회사가 미리 약정에 명시한 경우에만 적용됩니다. 예를 들어 고객이 비밀번호를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고 "대신 거래해달라"고 부탁한 경우입니다.
접근매체를 다른 사람에게 빌려준 경우
신용카드나 계좌정보를 친구나 가족에게 빌려주거나 대신 사용하도록 맡긴 경우입니다. 이때 발생한 피해는 고객이 책임져야 합니다.
접근매체를 담보로 제공한 경우
급전이 필요해서 신용카드를 담보로 맡기거나 양도한 경우입니다. 이런 행위 자체가 불법이므로 금융회사는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법인 고객의 경우 (소기업 제외)
대기업이나 중견기업 등 법인 고객의 경우, 금융회사가 충분한 주의의무를 다했다면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만 소기업은 개인과 동일하게 보호받습니다.
보안조치를 거부한 경우
금융회사가 추가 보안조치를 제안했는데 고객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해서 사고가 발생한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OTP 사용을 권했는데 불편하다는 이유로 거부한 후 피해를 입은 경우입니다.
이런 면책 사유는 고객의 고의나 중대한 과실에 한정되며, 약관에 미리 기재된 경우에만 적용됩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보이스피싱에 속아 제3자에게 금융거래정보를 모두 알려준 경우 고객의 중대한 과실로 인정되기도 합니다.
금융회사 배상책임 강화는 전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유럽연합의 PSD2(결제서비스지침 2), 영국의 오픈뱅킹 규제 등도 모두 금융기관의 책임을 강화하고 소비자 보호를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글로벌 기준에 맞춰 제도를 정비하고 있습니다. 특히 디지털 금융이 확산되면서 새로운 위험이 등장하고 있어, 이에 대응하는 법제도 개선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금융업계는 핀테크와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금융회사의 배상책임 제도도 계속 발전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인공지능, 블록체인 등 기술 발전에 맞춰 새로운 위험요소에 대한 배상체계도 마련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소비자 보호라는 기본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기술이 복잡해질수록 일반 소비자가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금융회사의 책임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금융회사 배상책임 법제화는 금융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신뢰할 수 있는 금융시장을 만들기 위한 필수적인 제도입니다. 앞으로도 변화하는 금융환경에 맞춰 지속적으로 개선되어 나갈 것입니다.